마음의 공간

감정을 넘어설 때

아비채 2025. 1. 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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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물처럼

 

감정 기복이 있고, 오랫동안 감정에 흔들리며 살아왔다.

감정이 자신인 줄 알고,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삶은 후회되는 게 많다.

 

어릴 적 언니가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결혼해서도 네가 싫으면 그만두고 나올 거야"

언니는 나의 약점을 알고, 염려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들은 말이지만, 지금까지 떠올리며 살고 있다.

 

열 살 위의 언니는 5년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나에겐 어머니 같은 존재로

일로 바쁜 어머니가 미처 케어하지 못하는 부분을 섬세하게 돌봐주셨다.

독립해서도 언니를 찾아가면 항상 푸근한 기분이 들었다.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존재만으로도 안식처가 되었던 언니였다.

그렇게 언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

 

철이 늦게 들었고, 살기에 바빴고, 감정에 휘둘리던 나에게서,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던 나에게서

언니는 떠났다.

언니가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

 

'난 철이 늦게 드는 사람 같다'는 말을 스스로 했었다.

나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이다.

언니 말대로

싫으면 그만두었고, 관계에서 불편해지면 내가 원하던 일도 중도에 포기했다.

시도는 잘했으나, 힘들거나 불편해지면 쉽게 쉽게 그만두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었다.

그렇게 감정에 휘둘리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오며 실망도 많이 했다.

그 결과는 자괴감과 우울이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싫다고 힘들다고 해서 가정생활을 그만두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오래되면 잘 읽은 묵은지처럼, 푹 삭은 맛깔난 맛이 난다는 것을

가정도, 부모 자식도, 부부 관계도 그런 것 같다.

 

소중하고 가까운 관계는 오래 견디고 인내할수록 잘 익은 묵은지처럼 깊은 맛이 난다는 것을...

 

감정에 휘둘리며 삶을 살아왔지만

그래서 놓치기도 하고, 상처도 많이 주고받았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부족한 대로 그 과정을 잘 견디어 낸 지금,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감정 기복에서 많이 벗어난 지금

언니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쉽고 슬프다. 언니에게 받기만 해서...

 

감정 너머로

더 넓게 시야를 확장하여 세상과 삶을 바라보려 한다.

 

누구나 자신의 취약한 부분이 있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취약점을 아는 것, 어른이 되는 첫걸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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